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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러운 2030…’김 대리’가 사라진다: AI 가 무너뜨리는 경력 사다리

서러운 2030…’김 대리’가 사라진다: AI 가 무너뜨리는 경력 사다리

“고연봉 주니어 개발자가 희망퇴직 1 순위다.” 한 게임회사 인사 담당자의 고백이다. “프로젝트를 책임질 소수의 시니어 개발자와 디자인 인력은 아직 인공지능으로 대체하기 어렵지만 주니어 개발자 수요가 크게 줄었다.” 입사 5~10 년차, 20 대와 30 대가 맡던 실무자 자리. 기업에서 ‘김 대리’라 불리던 그 자리가 AI 로 가장 먼저 대체되고 있다.

2026 년 3 월 30 일, 중앙일보가 국가통계포털 마이크로데이터를 분석한 결과는 냉혹하다. 20·30 대 실직자 중 비자발적 실직자 비중이 지난해 38.2% 를 기록했다. 코로나 위기 직후인 2021 년 이후 최고치다. 10 년 전인 2015 년 (26.9%) 보다 11.3% 포인트 올랐다. 같은 기간 40·50 대는 57.5% 에서 62.1% 로 4.6% 포인트 늘어나는 데 그쳤다.

통계는 추상이 아니다. 명예퇴직·조기퇴직·정리해고를 겪은 30 대는 지난해 1 만 9412 명이었다. 10 년 전 (1 만 3846 명) 에서 40.2% 늘어난 수치다. 20 대 역시 1 만 5351 명에서 1 만 9411 명으로 26.4% 증가했다. 40 대 (13.1%), 50 대 (16.8%) 증가폭의 두 배 이상이다.

인구 자체가 감소하는 20·30 세대가, 비자발적으로 실직하는 절대적 숫자는 늘고 있다. 김유빈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의 말처럼 “이들이 체감하는 고용 불안은 통계 이상으로 더 클 수 있다.”

희망퇴직은 더 이상 40·50 대의 영역이 아니다. ‘전 연령 희망퇴직’이 확산하면서 대상은 30 대까지 낮아졌다. 크래프톤은 지난해 말 희망퇴직 프로그램을 실시하면서 근속 연수, 직군, 연령 제한을 두지 않았다. 11 번가, LG 생활건강, 롯데온, SSG닷컴 등도 사정은 비슷하다.

오성호 피플그로스컨설팅 대표는 “과거 희망퇴직이 조직을 젊게 만드는 ‘세대 교체’에 가까웠다면 최근엔 ‘역량 교체’ 성격이 짙다”며 “대체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되면 나이와 무관하게 정리 대상이 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AI 확산에 대응해 기업이 신규 채용 문을 좁히면서 ‘김 대리 실종’은 더 심화할 전망이다. 이미 청년이 선호하는 대기업에선 ‘김 대리’보다 ‘김 부장’이 더 많은 역전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자산 2 조원 이상 대기업 124 곳 조사 결과, 30 세 미만 인력 비중은 2022 년 21.9% 에서 2024 년 19.8% 로 감소했다. 같은 기간 50 세 이상은 19.1% 에서 20.1% 로 증가해 2015 년 이후 사상 처음으로 30 세 미만을 앞섰다.

기업별로 보면 더 두드러진다. 삼성전자의 20 대 비중은 2022 년 30.8% 에서 2024 년 24.2% 로 감소했다. SK 하이닉스는 같은 기간 29.6% 에서 14.6% 로 절반 이하로 쪼그라들었다. 네이버 역시 25.4% 에서 18.3% 로 7.1% 포인트 줄었다.

실제로 최근 통계에선 노동시장 밖으로 이탈하는 청년층이 증가하는 흐름이 뚜렷하다. 지난해 30 대 ‘쉬었음’ 인구는 30 만 9000 명으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쉬었음’은 학업·육아·질병 등 특별한 이유 없이 일도 하지 않고 구직활동도 하지 않는 비경제활동인구를 뜻한다. 이 가운데 일한 경험이 있는 인원은 29 만명으로 전체의 90% 다. 상당수는 노동시장에 한 차례 진입했다가 밀려난 뒤 구직 자체를 멈췄을 가능성이 있다는 의미다.

윤동열 건국대 경영학과 교수는 “적지 않은 인원이 고숙련 일자리로 이동하지 못한 채 질 낮은 일자리를 경험하거나 해고 등을 겪게 됐고 이에 따라 노동시장에 대한 참여 의지 자체가 꺾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House of 7 의 핵심 가치 프레임워크 (CVF) 로 이 위기를 살펴보자.

첫째, **정의와 공정성**이다. AI 도입의 이득은 누구에게 돌아가는가? 기업은 인건비 절감, 생산성 향상이라는 이득을 본다. 시니어 개발자와 디자인 인력은 “아직 대체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살아남는다. 하지만 주니어 개발자, 20·30 대 실무자는 정리대상이 된다. 이들이 AI 교육과 재교육의 기회를 충분히 받았는가? 기업이 AI 도입으로 얻은 이익의 일부는 이들에게 재투자되었는가?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30 대 실직자 중 재교육을 받은 비율은 15% 미만이다. 대부분의 재교육은 실직 이후에 이뤄지며, 그마저도 생계 문제로 참여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정의롭지 않은 전환이다.

둘째, **비해악 (Non-Maleficence)**이다. AI 도입은 해를 끼치지 않는가? ‘김 대리’의 실직은 개인의 생계 위기를 넘어, 사회적 신뢰의 붕괴로 이어진다. “열심히 일하면報償을 받는다”는 계약이 깨진다. “경력을 쌓으면 안정을 얻는다”는 사다리가 무너진다. 이 해를 기업이, 정부가, 사회가 어떻게 보상할 것인가?

브루킹스연구소 보고서는 AI 시대 노동의 미래를 ‘사람 중심’으로 재설계할 것을 제안한다. 돌봄 및 교육직 확대, 노사정 공동 설계를 통한 AI 도입이 그것이다. 하지만 한국 정부와 기업의 AI 전략에서 ‘사람 중심’은 구호일 뿐, 구체적 보상 계획은 부재하다.

셋째, **지속가능성**이다. ‘김 대리’가 사라진 조직은 지속 가능한가? 주니어 개발자가 사라지면 시니어 개발자는 누가 돕는가? 실무 조율, 자료 조사, 기초 코딩을 누가 하는가? 기업은 “AI 가 한다”고 답할지 모른다. 하지만 AI 는 맥락을 이해하지 못한다. 조직의 암묵지를 축적하지 못한다. 5 년 후, 10 년 후, 그 AI 를 유지보수할 인재는 어디서 오는가?

신규 채용을 줄인 기업은 5 년 후 ‘인재 단절’을 마주할 것이다. 30 대가 없으면 40 대는 어디서 오는가? 20 대가 없으면 30 대는 어디서 오는가? 지속가능성은 단기 효율성이 아니다.

넷째, **진실성과 투명성**이다. 정부는 AI G3 강국 도약을 선언한다. 기업은 AI 전환 (AX) 을 외친다. 하지만 ‘김 대리’의 실직은 투명하게 보고되지 않는다. 중앙일보 분석이 나오기 전까지, 이 통계는 공론화되지 않았다. AI 도입으로 몇 명이 실직했는가? 어떤 재교육이 제공되었는가? 어떤 보상이 있었는가? 이 질문에 답할 의무는 누구에게 있는가?

다섯째, **문화적 존중**이다. 한국의 ‘김 대리’는 단순한 직급이 아니다. 조직에서 일하며 기술을 배우고, 선배에게 배우고, 후배를 키우는 ‘경력 사다리’의 상징이다. 그 사다리가 무너진다는 것은, 한국적 조직 문화의 근간이 흔들린다는 것이다.

한국 기업은 오랫동안 ‘평생고용’은 아니더라도 ‘장기고용’을 암묵적 계약으로 삼았다. 성실하게 일하면 조직이 보호한다는 신뢰. 그 신뢰가 AI 라는 이름으로 해체되고 있다. 문화적 존중은 이 신뢰를 어떻게 보존할 것인가를 묻는다.

전문가들은 청년들이 AI 시대의 구조 변화에 뒤처지지 않도록 보다 이른 단계부터 역량 개발을 지원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실직 이후 이뤄지는 재교육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윤동열 교수는 “산업 변화와 경기 등 불확실성이 크고, 노동시장이 경직될수록 기업이 채용에 더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며 “해고 등 출구 전략이 마땅치 않다 보니 신규 채용부터 줄이는 선택을 하게 되고 고스란히 청년층의 부담으로 이어진다”고 말했다.

그는 “고용 시장의 유연 안정성을 높이는 동시에 중견기업이 청년들이 원하는 대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장기적인 기업 성장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이 조언은 익숙하다. 10 년 전에도, 20 년 전에도 한국 정부는 ‘청년 고용 대책’을 발표했다. 하지만 ‘김 대리’는 사라지고 있다. 통계는 악화하고 있다. 사다리는 무너지고 있다.

질문은 이것이다: AI 가 ‘김 대리’를 대체하는 것이 기술적 필연인가, 아니면 사회적 선택인가?

기술은 대체 ‘가능성’을 만든다. 하지만 대체 ‘필연성’은 사회적 합의의 결과다. 기업이 AI 를 도입할 때, 정부는 AI 기본법을 시행할 때, 우리는 물어야 한다: 이 전환에서 누가 보호받는가? 누가 희생되는가? 그 희생을 누가 보상하는가?

2026 년 3 월, ‘김 대리’는 사라지고 있다. 서럽게. 통계로. 희망퇴직 명단으로. 노동시장 밖 ‘쉬었음’으로.

정부는 AI G3 강국을 선언한다. 기업은 AI 전환을 외친다. 하지만 ‘김 대리’의 질문은 남는다: 강국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전환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사다리가 무너지면, 아무도 오를 수 없다. AI 가 대체할 수 없는 것은 ‘경험’이 아니다. ‘신뢰’다. 조직이 구성원을 보호한다는 신뢰. 사회가 청년을 버리지 않는다는 신뢰. 그 신뢰가 무너지면, AI 는 아무것도 지킬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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