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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조 원의 역설: 한국 AI 예산은 왜 반도체만 키우는가

10 조 원의 역설: 한국 AI 예산은 왜 반도체만 키우는가

2026 년 4 월 28 일, 국회미래연구원 보고서는 묻고 있었다. “정부의 AI 투자가 옳은 방향인가?” 2026 년 범정부 AI 예산은 10 조 1000 억 원. 전년 대비 3 배 증가한 역대 최대 규모다. 민간에서는 삼성전자와 SK 하이닉스가 합산 약 70 조 원의 설비투자를 집행하며 글로벌 HBM 시장 점유율 80% 를 유지하고 있다. 숫자만 보면 한국은 AI 강국이다. 하지만 보고서는 정반대의 결론을 내렸다. “기반모델·응용서비스 생태계는 여전히 취약하다. 반도체·하드웨어 인프라 편중 구조를 바꾸지 않으면 AI 가치사슬 상위 계층에서의 경쟁력 확보는 어렵다.”

문제는 구조적이다. 국회미래연구원은 AI 가치사슬을 4 개 계층으로 나눈다. 1 계층은 반도체, 2 계층은 하드웨어 인프라, 3 계층은 기반모델 (파운데이션 모델), 4 계층은 응용 소프트웨어·서비스·플랫폼이다. 수익성과 시장 지배력이 가장 높은 계층은 3·4 계층이다. 엔비디아 (기반모델·플랫폼), 오픈 AI (기반모델), 마이크로소프트 (응용서비스) 가 이 계층에서 막대한 이익을 독점한다. 한국의 투자 대부분은 1·2 계층에 집중돼 있다. GPU 도입 수량, 데이터센터 구축 면적 — 이런 투입 중심의 성과 지표는 예산이 집행되었다는 사실만 보여줄 뿐, 현장에서 얼마나 활용되는지는 보여주지 않는다.

이 편중은 우연이 아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5 조 1000 억 원), 산업통상자원부 (1 조 1000 억 원) 등 다수 부처에 예산이 분산돼 있다. 칸막이식 중복과 비효율이 구조적으로 발생한다. 보고서는 2010 년대 스마트팩토리 보급 사업을 예로 들었다. 설비는 구축됐으나 현장 활용률이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같은 실패가 AI 투자에서 반복될 위험이 있다. 정부는 이달 150 조 원 규모 국민성장펀드를 통해 AI 가치사슬 전반으로 투자 범위를 확장했다. 소버린 AI 를 2 차 메가프로젝트로 선정했다. K-엔비디아 (국산 NPU) 에서 나아가 반도체·데이터센터·파운데이션 모델·응용서비스로 이어지는 전방위 가치사슬 자립을 목표로 삼는다.

하지만 질문은 남는다. 150 조 원의 펀드가 실제로 가치사슬 하위 계층에서 상위 계층으로 자본을 이동시킬 수 있을까? 국회미래연구원은 세 가지 제언을 내놓았다. 첫째, 투자 방향의 교정. 피지컬 AI 는 아직 글로벌 강자가 확정되지 않은 초기 단계다. 국내 제조업 기반이 비교우위가 될 수 있다. 둘째, 공공 투자의 성과 관리. 설비 구축이 아닌 활용률로 평가해야 한다. 셋째, 규제 간 정합성 확보. AI 기본법, 데이터 3 법, 개인정보보호법이 서로 충돌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특히 국민연금 (약 1400 조 원), 한국투자공사 (약 320 조 원) 등 공적 기금이 국내 AI 벤처의 앵커 투자자로 기능할 수 있도록 운용 기준을 정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여기에 하우스 오브 7 의 윤리 렌즈를 적용해보자. 첫째, 형평성 (Justice): 10 조 원 예산의 이익은 누구에게 가는가? 대기업 (삼성, SK) 은 설비투자 보조금을 받는다. 중소 AI 벤처는 자금 조달이 어렵다. AI 가치사슬 상위 계층의 수익은 해외 플랫폼 기업으로 유출된다. 둘째, 투명성 (Transparency): 예산 배분 기준은 무엇인가? 10 조 원 중 몇 % 가 기반모델 개발에 쓰이는가? 몇 % 가 응용서비스 생태계 조성에 쓰이는가? 이 수치는 공개되지 않는다. 셋째, 지속가능성 (Sustainability): 스마트팩토리 실패의 교훈은 무엇인가? 설비 구축으로 끝나는 사업은 지속가능하지 않다. 활용률, 생태계 성장, 일자리 창출 — 이런 지표로 평가해야 한다. 넷째, 문화적 존중 (Cultural Respect): 한국에는 ‘빠른 추격자 (fast follower)’ 전략의 전통이 있다. 하지만 AI 시대에는 이 전략이 통하지 않는다. 기반모델은 추격 대상이 아니라 생태계의 규칙을 만드는 주체다. 한국이 추격자 역할에 머무른다면, 영원히 하청 국가로 남을 것이다.

보고서를 집필한 유희수 국회미래연구원 연구위원은 말했다. “AI 투자의 방향 교정, 공공 투자의 성과 관리, 규제 간 정합성 확보는 모두 입법과 예산 심의라는 국회 고유의 기능과 직결되는 과제다. AI 투자가 옳은 방향과 지속가능한 구조로 설계될 수 있도록 국회가 보다 능동적으로 임해야 한다.” 10 조 원은 큰 돈이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돈의 방향이다. 반도체만 키우는 AI 예산은 한국을 ‘하드웨어 하청 국가’로 고정시킨다. 기반모델과 응용서비스를 키우지 않는 한, 한국 AI 는 영원히 가치사슬의 하층에 머무를 것이다. 질문은 이것이다: 2030 년, 한국은 AI 가치사슬의 어느 계층에 서 있을까? 1·2 계층의 설비 공급자일까, 아니면 3·4 계층의 규칙 제정자일까? 답은 이번 예산 심의에서 결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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