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 년, 한국은 어디에 서 있는가
2026 년 5 월 7 일, 서울 강남의 한 벤처캐피탈 사무실에서 김성호 (가명) 대표가 투자 심의위원회를 마치고 나왔다. 그가 검토한 스타트업은 AI 기반모델을 개발하는 팀이었다. 하지만 심의는 10 분 만에 끝났다. “기술은 좋지만, 시장이 없습니다. 한국에는 기반모델을 살 기업이 없어요. 다들 이미 엔비디아, 오픈 AI, 마이크로소프트와 계약했죠.” 김대표가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며 중얼거렸다. “우리는 여전히 1 계층만 만들고, 3·4 계층은 미국이 가져간다.”
2027 년, 메모리 반도체는 부족하다. 삼성전자와 SK 하이닉스는 2027 년까지 메모리 부족 현상이 지속될 것으로 전망한다. AI 시스템에 필요한 고대역폭 메모리 (HBM) 수요가 폭발하는 반면, 생산 능력 증대가 이를 따라가지 못한다. 시장 조사 기관들은 안정적인 공급을 위해 연간 12% 의 생산 증가가 필요하다고 분석하지만, 현재 투자 계획으로는 약 7.5% 증산에 그친다. 공급은 수요의 60% 수준. 일부 전문가들은 부족 현상이 2030 년까지 이어질 수 있다고 본다.
부족은 기회를 만든다. 하지만 그 기회가 누구의 것인가. 삼성전자와 SK 하이닉스는 이미 2027 년까지의 생산 물량에 대한 장기 공급 계약 (LTA) 을 확보했다. 고객사는 엔비디아,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 모두 미국 기업이다. LTA 는 사업 안정성을 높인다. 하지만 동시에 지정학적 족쇄가 된다. 미중 갈등이 심화될 때, 한국은 미국 진영에 묶인 채 중국 시장을 잃을 위험이 있다. 중국은 한국의 최대 반도체 수출 시장이다. 2026 년 현재 중국은 반도체 자급자족을 가속화하고 있으며, 화웨이는 자체 AI 칩 ‘어센드 (Ascend)’ 시리즈로 한국 AI 컴퓨팅 시장 진출을 계획하고 있다.
더 근본적인 질문은 AI 가치사슬의 구조다. 국회미래연구원은 AI 가치사슬을 4 개 계층으로 나눈다. 1 계층 반도체, 2 계층 하드웨어 인프라, 3 계층 기반모델, 4 계층 응용서비스다. 수익성과 시장 지배력이 가장 높은 계층은 3·4 계층이다. 엔비디아, 오픈 AI, 마이크로소프트가 이 계층에서 막대한 이익을 독점한다. 한국의 AI 생태계는 2026 년에도 여전히 1·2 계층에 집중돼 있다. AI 기반모델 응용 서비스 생태계는 취약하다. 많은 국내 기업들이 AI 파일럿 단계에서 실제 운영 단계로 나아가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전사적 통합, 거버넌스, 지속 가능한 운영 체계가 부족하다. 전문 인력도 부족하다. 한국에는 AI 서비스가 부족하다.
여기에 하우스 오브 7 의 윤리 렌즈를 세 번째로 적용하자. 첫째, 형평성 (Justice): 2027 년 부족 시대의 이익은 누구에게 가는가. 미국 고객사와 한국 반도체 기업은 LTA 로 이익을 확보한다. 하지만 한국 AI 벤처, 한국 소비자, 한국 노동자는 어떻게 되는가. 둘째, 투명성 (Transparency): LTA 계약의 조건은 공개되지 않는다. 가격, 물량, 기간 — 이 정보는 주주에게만 공개된다. 국민연금 (약 1400 조 원), 한국투자공사 (약 320 조 원) 등 공적 기금이 앵커 투자자로 기능할 수 있다는 제안은 있으나, 실제 운용 기준은 정비되지 않았다. 셋째, 지속가능성 (Sustainability): 2030 년까지 부족이 지속된다는 전망은 지속가능한가. 부족에 의존한 이익 구조는 공급이 해소되면 붕괴한다. 더 근본적으로, 1·2 계층에만 집중된 산업 구조는 지속가능한가. 넷째, 문화적 존중 (Cultural Respect): 한국의 ‘빠른 추격자’ 전략은 AI 시대에 통하는가. 기반모델은 추격 대상이 아니라 생태계의 규칙을 만드는 주체다. 한국이 추격자 역할에 머무른다면, 영원히 하청 국가로 남을 것이다.
중국의 부상은 또 다른 층위의 리스크다. 중국은 2026 년까지 실리콘 웨이퍼 생산 비율을 70% 이상으로 높이는 것을 목표로 한다. SMIC 와 같은 현지 파운드리 업체들은 첨단 공정 기술 개발에 박차를 가한다. 화웨이는 AI 칩 매출이 2026 년 최소 60%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며, 약 120 억 달러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화웨이는 ‘어센드 950’ 시리즈로 한국 AI 컴퓨팅 시장에도 진출할 계획이다. 이는 한국 기업들에게 새로운 경쟁자다. 하지만 더 큰 질문은 이것이다: 한국이 엔비디아 종속을 피하려다 오히려 중국 기술 생태계에 락인될 수 있는가. 아니면 미국 생태계에 영구적으로 묶일 것인가. 양자택일의 길만 있는가.
국회미래연구원은 세 가지 제언을 내놓았다. 투자 방향의 교정. 공공 투자의 성과 관리. 규제 간 정합성 확보. 특히 국민연금, 한국투자공사 등 공적 기금이 국내 AI 벤처의 앵커 투자자로 기능할 수 있도록 운용 기준을 정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이 제언은 2026 년 5 월 현재도 여전히 제언이다. 실행되지 않았다. 150 조 원 규모 국민성장펀드는 AI 가치사슬 전반으로 투자 범위를 확장했다. 소버린 AI 를 2 차 메가프로젝트로 선정했다. 하지만 10 조 1000 억 원 AI 예산의 대부분은 여전히 1·2 계층에 집중돼 있다.
2030 년, 한국은 AI 가치사슬의 어느 계층에 서 있을까. 1 계층의 설비 공급자일까. 2 계층의 인프라 구축자일까. 아니면 3·4 계층의 규칙 제정자일까. 57 조원의 기록적 이익은 그 질문의 답이 아니다. 그 질문을 던질 자본을 확보했을 뿐이다. 부족 시대의 이익은 일시적이다. LTA 의 안정성은 양날의 검이다. 중국의 부상은 기회이자 위협이다. 이 모든 변수 속에서 한국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하나다: 1·2 계층에서 3·4 계층으로의 이동. 그 이동 없이는, 한국은 영원히 ‘하드웨어 하청 국가’로 남을 것이다.
질문은 이것이다: 2030 년, 한국은 누구의 편에 서 있는가. 미국의 고객인가. 중국의 시장인가. 아니면 한국 자신의 미래인가. 답은 이번 예산 심의에서, 이번 LTA 협상에서, 이번 AI 벤처 투자에서 결정된다. 57 조원은 흐른다. 그 흐름의 방향을 바꾸는 것은, 돈을 버는 기업이 아니라, 돈을 쓰는 사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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