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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쓰레기장이 된 한국 인터넷: AI 슬롭 소비 세계 1위의 불편한 진실

디지털 쓰레기장이 된 한국 인터넷: AI 슬롭 소비 세계 1위의 불편한 진실

서울 강남의 한 카페에서 70대 할머니가 스마트폰 화면에 빠져 있다. 화면에는 AI가 생성한 영상이 재생되고 있다—사실처럼 보이지만 완전히 허구인 건강 정보, 투자 조언, 감동적인 이야기들. 손녀가 “할머니, 그거 다 가짜예요”라고 말해도, 할머니는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보는데 가짜겠어?”라고 반문한다. 이 장면은 오늘날 한국 디지털 환경의 불편한 단면을 보여준다.

미국 영상 플랫폼 카프윙(Kapwing)이 2026년 1월 20일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AI로 생성된 저품질 콘텐츠, 이른바 ‘슬롭(Slop)’의 최대 소비국으로 등극했다. 전 세계 상위 유튜브 채널 1만5000개 중 AI로만 제작된 저품질 콘텐츠를 게시하는 278개 채널을 분석한 결과, 한국 기반 AI 슬롭 채널의 누적 조회수는 84억5000만 회에 달했다. 2위 파키스탄(53억 회)과 3위 미국(34억 회)을 크게 웃도는 수치다. 이들 채널의 연간 광고 수익은 약 1690억 원으로 추정된다.

‘슬롭’이라는 용어는 생성형 AI를 이용해 근거 없는 이야기를 사실처럼 꾸미거나, 기존 콘텐츠를 짜깁기하여 새로운 것처럼 포장한 저품질 콘텐츠를 의미한다. 문제는 단순한 품질 저하를 넘어선다. 정보 판별력이 상대적으로 낮은 고령층과 어린이들이 자극적인 AI 합성 영상과 허위 사실을 실제로 오인하는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 한국의 급속한 고령화 사회에서 이는 더욱 심각한 문제로 부상한다.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의 19%를 넘어선 상황에서, 디지털 리터러시 격차는 단순한 기술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취약성의 문제가 되었다.

더 우려스러운 것은 ‘죽은 인터넷 이론(Dead Internet Theory)’의 현실화 가능성이다. AI가 콘텐츠를 생성하고, AI가 댓글을 달고, AI가 조회수를 부풀리는 생태계에서 실제 인간 사용자는 점점 주변부로 밀려난다. 한때 ‘디지털 강국’으로 불렸던 한국이 이제는 AI가 만든 허구의 바다에서 가장 많이 표류하는 국가가 된 것이다. 전문가들은 AI를 도구로 쓴다는 것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영상이 담고 있는 맥락과 의도, 사회적 해악 여부를 판단하는 영상 이해 기술이 우선되어야 한다고 조언한다. 그러나 이용자 개인의 판단 역량과 검수 능력에 따른 격차는 현실적으로 해소되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House of 7의 핵심 가치인 투명성(Transparency)과 비악의성(Non-Maleficence)의 렌즈로 이 현상을 바라보면, 불편한 질문들이 떠오른다. 플랫폼 기업들은 AI 생성 콘텐츠를 명확히 표시할 의무가 있는가? 광고 수익 모델이 슬롭 확산을 부추기는 구조적 문제는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2022년 시행된 한국의 AI기본법은 고위험 AI에 대한 규제를 담고 있지만, 저품질 콘텐츠 범람이라는 ‘저위험이지만 광범위한 해악’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다. 정부의 디지털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 예산은 2025년 기준 연간 500억 원에 불과하며, 이마저도 청소년 중심으로 편성되어 있다. 정의(Justice)의 관점에서, AI 슬롭의 피해가 고령층과 저소득층에 집중되는 불평등 구조는 단순한 개인 책임론으로 넘길 수 없는 사회적 과제다.

한국이 AI 슬롭 소비 1위라는 타이틀은 단순히 부끄러운 기록이 아니다. 이는 세계에서 가장 빠른 인터넷, 가장 높은 스마트폰 보급률을 자랑하는 나라가 동시에 디지털 쓰레기장이 될 수 있다는 경고다. 기술 선진국이라는 자부심 뒤에 숨겨진 디지털 취약성을 직시해야 할 때다. 우리는 AI가 생성한 콘텐츠의 소비자로만 남을 것인가, 아니면 건강한 디지털 생태계의 설계자가 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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